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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구금초:매년8월(양)마지막 일요일

강원도 양구군 방산면
작성자 항령
작성일 2007-03-12 (월) 06:38
추천: 0  조회: 891       
IP: 123.xxx.84
불사이군의 뜻 꺾지 않은 '장하'
불사이군의 뜻 꺾지 않은 '장하'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 평사별서
 
2007년 02월 14일 (수) 10:42:20 박종혁 기자 pjh@hsnews.co.kr  
 
 
   
                                     ▲ 장하 선생 묘  
옛날부터 각 지방마다 자기지역의 특성을 한마디로 집약해서 표현하는 말들이 전해 내려온다. 힘센 사람들이 많은 지역에서는 “주먹자랑하지 마라.” 부자가 많은 지역에서는 “돈 가진 자랑 하지 마라.” 등의 말들로, 각각 지역적인 특징을 압축해서 표현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홍성지역에서는 어떤 말들이 전해 내려올까?
우리 홍성에서는 “홍성에 와서 인물 자랑 하지 마라.”는 말이 전해내려 온다. 아마도 이 말은 홍성지역에서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는 지역적인 특성이 담겨있다고 보여 진다.
 
 
 
 
 
 
 
   
        ▲ 장하 선생 신도비각  
홍성군지에 보면 우리 홍성사람의 성격을, 선비기질로서 시비정신이 강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시비정신은 옳은 것은 옳다고 하고,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떳떳하게 말하는 성격이라는 것이다. 홍성에서는 이것을 “경오를 따진다”, “경오 밝다”, “경오에 어긋났다” 등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홍성사람들의 전통적인 성격이, 한용운․ 김좌진․ 성삼문, 김복한 같은 훌륭한 인물들을 배출한 배경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고려 말에 불사이군을 외치며 낙향한 충신들도 홍성사람들의 성격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홍성군 서부면 중리에 가면, 능동 마을이 있다. 능동이란 마을 이름은, 고려말의 충신이었던 장하(張夏, 1316-1399)의 묘가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장하는 결성장씨 시조로서 고려말의 충신이다. 공민왕 때에 신돈의 잘못을 날카롭게 비판하는가 하면,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큰 공을 세웠으며, 여러 관직을 두루 거친 훌륭한 관리였다. 일찍이 나라에 큰 공을 세워서 문하시랑 평장사로 결성군(結城君)에 봉군되었다. 또한 그의 공으로 인해 홍성군 구항면 일대에 땅을 하사 받았다.
 
   
          ▲ 평산별장 우물  
장하는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의 운명이 위태롭자,
“큰집이 쓰러지는데 나무 한가지로 어떻게 떠받칠 수 있으며, 병이 쓸개에 박혔는데 아무리 명의가 있은들 무슨 도리가 있겠는가?” 라는 말을 남기고 결성 박철동으로 내려왔다. 이곳에서 작은 서당을 짓고 은거하였다. 서당의 이름을 평산별서((枰山別墅)라고 한다. 이곳에서 평생 후학들을 기르다가 1399년에 84세로 별세했다. 이태조가 여러 번 불렀지만 끝끝내 듣지 않고 불사이군의 뜻을 꺾지 않았다.

 
   
  ▲ 평산별장에서 바라본 청룡산  
장하는 고려 말에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정사를 바로잡아서 회복시켜보려고 무척이나 노력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사실들은, “潔身自靖하였으며 고려가 망하자 矢心罔僕 不仕我朝하니, 그 精忠貞節을 사람들이 칭송한다.” 는 말로 오래오래 전해지고 있다. 특히 장하의 묘아래 세워진 신도비에는 장하의 인물평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고려 말기에는 임금이 어둡고 정치가 어지러웠다.
아! 오직 장공만은 충의가 강직하여서
조정에서 임금을 보좌함에 그 말이 충성스럽고 곧아
군신의 의리에 밝아 강상을 붙들어 유지하니
누가 높이 우러러 보지 않으랴. 백대토록 빛날 것이로다.”

   
                           ▲ 평산별 장터  
장하의 묘는 서부면 능동마을에 있다. 또한 장하가 작은 정자를 짓고 말년을 보낸 평산별서 터와 우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아쉽게도 건물을 모두 허물어지고 주춧돌과 돌더미가 집터였다는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장하의 아들인 중로(仲魯) 역시, 고려에서 벼슬이 대신의 위치에 있었지만 아버지를 따라서 낙향하였다. 중로의 아들 3형제를 비롯한 후손들은 결성을 중심으로 하여 상당한 세력을 형성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 후손들은 왕촌(旺村), 교촌(校村), 묵동(墨洞), 초지(草枝), 백인(百仁) 등 5개 지파를 형성하며 내려왔다. 지금의 결성장씨들은 대개가 이들의 후손이다.

김정헌(동화작가, 구항초등학교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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