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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과 한국군   역사와 호국정신
파월 국군의 희생이 대한민국 재건에 미친 공헌 자료실 입니다.
작성자 참전자
작성일 2016-01-28 (목) 14:21
분 류 음해
ㆍ추천: 0  ㆍ조회: 769      
IP: 106.xxx.203
베트남참전 한국군은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이 없다.


<자유민주주의 국군으로서 공산주의 적과 싸웠을 뿐이다.>

- 베트남참전 한국군은 민간인을 학살한 사실이 없다.
- 음해세력의 논리는 참전당시 적 베트콩의 주장이며
불법적 소설에 다만 국민들이 속고 있을 뿐이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뜬금없는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론’이 한겨레신문과 동 신문 베트남통신원 구수정에 의해 2000년도에 시작된 이후 16년여 세월이 흐르면서 끊임없는 음해에 이슬에 옷 젖듯 사회에 홍건히 젖어 버렸다. 이는 한국사회의 두 가지 요소가 이 같은 환경 조성에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첫째 한국인에게 전쟁론은 6.25전쟁에서 겪었던 처절하고 절박했던 상황이 잠재의식에 깊이 깔려 있다. 민족 간 이념 전쟁이면서 상황에 따라 전선이 국토의 남북으로 오르내리고 피아간 전력이 남북으로 움직일 때 마다 선량한 양민에게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3년여 전쟁에서 적군과 UN군을 포함해 양측의 인명 피해가 300만에 가까운 이러한 6.25의 전황은 휴전 후에도 많은 자료를 통해 그대로 후대에 전해져 참상의 기억으로 자리 한다.

둘째는 좌익 진보 세력의 반한 반역사 운동에 베트남전 한국군이 이용 되면서 이들의 주장은 6.25 전쟁에 오버랩 되며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의 베트남전쟁 론은 6.25 전쟁과 대단히 상이한 부분을 전제하지 않으면 일반인과 전후세대는 잘못된 주장을 가려내기가 지극히 어려운 환경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인에 대한 베트남 전쟁론은 마치 알라스카에서 설상 생활만한 사람에게 이해하기 어려운 <속리산 가을 단풍> 세상을 이야기 해주는 것과 같다. 6.25전장과 베트남전장이 다른 점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베트남전장의 전선은 넓은 밀림지대에 기린 몸체의 문양같이 소규모 지역들로 듬성듬성 짜여있고 이 산재한 마을들은 적이 점령한 적색마을과 전략마을 자유월남 양민의 수가 우세한 안전마을 들이 혼재되어있었지만 정도의 차이일 뿐 적인 베트콩은 어느 마을이나 다 있었다. 이러한 전장은 휴전선 남쪽 자유민주주의 남베트남 전역에 산재해 있었지만 특히 중부지방 세력이 강력해서 거의 점령당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한국 지도로 설명하면 휴전 상태의 남한에 북한 게릴라들이 준동하여 남한 중부인 천안과 대전 사이를 완전히 장악하고 서울과 부산의 소통을 끊어버린 상태였다. 한국군 전투부대는 남베트남정부와 미국의 요청에 따라 이 중부지방에 집중 배치되었고 적을 퇴치해 남북을 연결 완수한 것이 저 유명한 맹호부대와 백마부대의 연합 전술로 승리한 <오작교> 작전이다. 여기서 다시 유념할 것은 한국군은 베트남국민과 싸우러 간 것이 아니며 공산주의 세력을 물리쳐 남베트남에 자유, 평화를 찾아주기 위해 간 것이었다. 이러한 전장 환경에서 한국군이 민간인을 함부로 학살 할 수 있었는지 보고자 한다.

1. 1차. 2차. 3차 베트남(월남)전쟁 특징별 구분
제1차 베트남전쟁-특징(식민지전쟁) : 프랑스 중국 일본 등 강대국 대 베트남민족 투쟁
제2차 베트남전쟁-특징(이념전쟁) : 공산주의 대 자유민주주의(사상투쟁)
  ⓵북베트남(국제공산주의) 지원세력 : 중국, 북한, 소련 등
  ⓶남베트남(자유민주주의) 지원세력 : 미국, 한국 등 7개 연합군
제3차 베트남전쟁-특징(민족주체전쟁) : 외국군배제 민족만의 전쟁으로 이 3차 베트남전쟁을 통해 공산주의 세력이 국제평화협상의 약속을 깨고 기습남침 함으로서 베트남이 공산주의로 통일된 예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민족자주론’을 앞세운 기만과 불법적 침공의 폭력성이 자명한 사실로 드러났다.
 
2. 제2차 베트남전장의 환경
  ⓵풍토 : 열대성 기후와 험악한 지형 맹수와 독충
  ⓶국민성 : 1,700년의 강대국 침략에 다져진 높은 외세저항정신
  ⓷적 탐색 : 외견상 양민과 적인 베트콩(Viet Cong, 越共)의 구분 불능

~그들은 역사를 통해 터득한 저항방법을 활용해 생활 자체가 은거였으며 저항이었다. 또한 자신들의 거점이나 근거지를 철저하게 은폐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논에서 일을 하는 농부도 기회가 되면 무장 세력이 되었다가 연합군의 수색이 시작되면, 다시 농부가 되는 변장술을 구사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승려도, 여성도, 어린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연합군의 입장에서 볼 때 베트콩은 있는 곳도 없었고, 없는 곳도 없었다.~(국방부 군사편찬 연구소 ‘통계로 본 베트남전쟁과 한국군’ p60) 이러한 적진의 상황은 우연한 것이 아니며 베트남 지도자 호치민의 공산주의 이념과 1,700년의 ‘인민전쟁’전략 전술이 실현되어 나타나는 인민들의 단결된 작전의 발로였다.

~인민전쟁 전략의 개념은 보다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것으로서 군사적, 정치 적, 경제적 영역 모두를 포함한다. 여기서 ‘인민에 의한’이란 뜻은 단순히 군 대 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참여한다는 뜻이며, ‘인민을 위한’이란 독립과 통 일 또는 인민의 행복 등 인민이 목표로 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전쟁이라는 뜻이다. 인민전쟁 전략의 개념은 물적 자원보다는 인적 자원을 더 중요시한다. 그래서 호찌민 주석에 의해 지도된 인민전쟁 전략은 모든 인구(人口)를 동원하는 광범위한 것이다.”25) ~ (군사편찬연구소 -베트남전쟁 연구 총서 p241) 결국 호치민의 인민전쟁 전략은 통치자로서 자기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자국 인민의 모든 인구를 살육의 전쟁터에 내 몬 것으로서 베트남전에서 남녀노소를 망라하여 정규군이 아닌 불특정 다수인에서 살상 문제가 발생 한 것은 그 법적 윤리적 책임이 호치민에 있는 것이다.

  ⓸연합군의 작전은 간혹 베트콩을 돕기 위해 기습 침투하는 월맹정규군과 싸운 소수 작전 외 대부분의 지상 작전은 외형상 민간인 복장을 한 베트콩과 전투(반한 세력이 한국군 민간인 학살 론을 주장하는 근거)를 하는 것이었다.
 
3. 피아의 작전개념
  ⓵공산군 측 : 자신들이 필요한 시간과 장소(동굴 등)에서 전투할 수 있도록 작전을 세우고 게릴라식 기습, 테러 및 파괴 전술을 시도
  ⓶연합군 측 : 월남정부가 주도하는 연합군 작전회의에서 평정작전 지역이 결정 되면 작전명령 하달되고 부대 작전실시(전투는 주로 월남군 미군 한국군이 주력 부대로 협동하여 작전 하였다.)
 
4. 한국군과 미군의 작전개념(한국군은 전장에서 인간존중의 휴먼정신을 강화하기 위해 미군과는 다른 독자적 전술개념을 적용 하였다.)
  ⓵미군의 작전 개념(웨스트모얼랜드 사령관)-특징 : 전통적인 정규전 개념
수색 및 격멸(Search & Destroy)개념’에  입각한 정규작전 방식의 전술로서 게릴라들이 은거하고 있을 것으로 판단된 지역을 탐색, 섬멸
  ⓶한국군의 작전 개념(채명신 사령관)-특징 : 게릴라전 대응전술을 3단계로 현지화한 전술개념 베트공을 주민과 분리시켜 격멸하는‘분리(Separation) 차단(Interception)격멸(Destroy)의 3단계
   ★제 1 단계 : 분리[물과 고기 관계인 베트콩과 주민을 분리(고기가 사는 연못에서 물을 퍼낸다!)] -작전이 명령된 적색마을 외곽에 확성기 방송과 삐라투입을 통해 전쟁을 원치 않는 사람은 아군 쪽으로 대피 하라는 선무작전 실행(예고시간 후 몇 차례의 시간 연장으로 충분한 시간을 줌 대피하는 주민은 짐을 옮겨주고 노약자를 업고 안아 피난을 도와줌)
   ★제 2 단계 : 차단[베트콩과 분리된 주민을 안전지대 이송] -적으로부터 분리된 주민은 전략마을이나 안전마을 또는 임시 수용 시설에 거주 시키고 모든 생활용품을 지급하고 안전하게 보호 됨
   ★제 3 단계 : 수색[적진 진입] -대피종료 방송과 함께 마을 수색을 통한 베트콩 색출 포획 무기압수 등 작전이행 (고립되어 체포에 순응하는 베트콩은 적군의 정보 녹취 후 월남군 관리 포로수용시설로 인계)수색당시 적측으로부터 선제공격이 있으면 모든 화기를 동원 응사하며 승리할 때까지 섬멸작전 실시 3단계 작전으로 평정된 지역은 베트남 정부에 인계하고 주민이 복귀하면 쌀과 농기계 제공하고 대민사업으로 교량, 학교신축 등 주민이 필요한 시설을 많이 지어주고 심지어 농사일 까지 함께 도와주고 태권도 시범 경로잔치 등으로 피난 중 격은 고생을 위로하여 민간인들로부터 한국군은 유익한 군대라는 인식을 심어줌

5. 자유월남정부가 실행한 안보개념의 마을 구분
   ① 적색마을 : 베트콩과 그 동거인들이 사는 마을
   ② 전략 촌  : 귀순한 베트콩과 그 동거인들을 수용 관리하는 마을
   ⓷ 안전마을 : 자유민주주의를 따르는 순수 자유월남 양민의 마을

6. 한국군과 미군의 전술개념이 전쟁에 미친 영향
   ●미군의 경우
   ①정규전 개념의 무력 주의 작전으로 적대적인 주민(남베트남) 양산
   ②군사력의 지나친 정치 간섭이 거듭된 실패로 적들의 저항의지에 내성(耐性)을 키움
   ●한국군의 경우
   ①주민에게 “한국군은 진정으로 남베트남을 돕기 위해 파병된 군인”으로  인식
   ②지역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력으로 베트콩과의 분리 및 적에 대한 정보 획득 기회 증대

7. 한국군 평소의 활동
한국군의 민사심리전
기본 지침 :  “100명의 베트콩을 놓치더라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한다.”
   목표
   ① 베트콩과 주민의 관계를 차단
   ② 강인한 국군 상을 보여 적에게는 공포심을 심고 주민들에게는 한국군에 대한 신뢰와 승리의 확신을 고취
   ⓷ 한⋅베트남 간 우호 증진과 친선 유대를 강화
   ⓸ 남베트남 정부의 시책을 최대한 지원
   ⓹ 주민들에게 한국군과 자유세계의 공동 노력을 인식
상기 목표 달성을 위해 파병된 한국군 장병은 전원 전투요원 화 ⋅ 전원 민사심리전 요원화로 활동 타국 연합군에 모범을 보여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임
 
8. 한국사회에 회자되는 “한국군 민간인학살”론의 위선과 패륜

   ① 오해 또는 음해 : 한국군이 민간인을 학살 했다는 것은 철저한 오해이거나 의도적인 음해이다. 외형상 적과 민간인을 구별하기 불가능한 베트남전에서 주월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의 민간인개념은 자유월남의 체제를 인정하고 ‘전략촌’이나 ‘안전마을’에서 자유민주주의 환경에 안주하는 양민을 뜻한다. 따라서 ‘민간인을 학살 했다’는 자유월남의 체제를 인정하는 국민을 학살 했다. 이어야 한다. 한국군은 자유베트남 정부의 요청이나 연합군 작전회의에서 선정된 적의 준동 지역에서만 ‘평정작전’을 하였음으로 작전 실행 지역은 호치민의 ‘인민전쟁’론과 대적 하는 현장임으로 ‘민간인 학살’이란 논리 성립이 되지 않는다.

   ⓶ 전장의 정서 : 인간이 사물을 대하는 감정과 정서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주관과 가치관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인다. 전장에서 장병의 감정은 생사를 넘나드는 극한의 공포와 긴장의 연속에 있지만 전투 종료 후 적측 현장에 가서 볼 때 작전으로 인해 입은 피해자의 상태를 보는 감정도 개인에 따라 다를 것이다. 특히 베트남 전장은 적인 베트콩이 외형상 민간인과 구별이 안 되는 상태에서 병사의 혹자는 자신의 사격에 의해서도 피해를 입었을 것이라는 상상이 적이었음에도 미안한 감정을 가질 수도 있고 복잡한 정서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이런 사병 중에는 “민간인이 죽었다” “민간인을 죽였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자신의 참전상황을 무용담으로 말하며 과장된 표현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전 상황에서 발생한 인명을 포함한 모든 사물의 파괴는 피, 아 모두 전쟁속의 운명이며 바보 같은 이념에 인간이 대적해 싸우도록 짜여 진 시대적인 불행사 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군도 5,099명의 전사자에 11,000여명의 전상자 그리고 수많은 고엽제 피폭 환자가 지금도 고통을 밭고 있다. 국제적인 평화협정에 의해 전쟁이 종결된 이상 피해자 관리는 각각 자국의 책임 하에 있는 것임으로 어떤 나라도 전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 당시의 상대국에 피해의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법과 상식에 용납되지 않는 행위이다.
 
    ⓷ 또한 인간이 있는 어느 곳에도 개인의 이기적인 범죄는 있는 것임으로 파월 한국군은 자유평화의 십자군으로서 군법을 엄격히 세워 모든 범죄에 준엄한 심판을 내렸다.
  

자료1:국방부,  파월한국군전사 10권, 전사편찬위원회, 1985, p. 541.
자료2:주월한국군사령부, 월남전종합연구 , 주월사 정리단, 1974, p. 1148.


 

⓸ 현재 대한민국에서 전쟁 상황에 발생한 적의 피해를 ‘민간인 학살’로 호도하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공표하는 것은 곳 적의 사상과 이념, 적의논리를 이용해 공연히 참전용사들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임으로 이는 엄연한 불법 행위일 뿐만 아니라 윤리 도덕적으로도 같은 국민으로서 자신 선대의 국가를 위해 희생한 숭고한 역사를 왜곡, 폄하, 모욕하는 패륜행위임이 자명 하다. 자유 평화를 파괴하는 공산주의 섬멸을 위해 한국군의 젊은 장병들도 아래 표와 같은 피해를 당했다.

  

베트남에 참전한 7개 연합국 중 50년이 흐른 현재 우리나라를 제외한 어떤 나라에서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을 거론하는 나라는 없다. 이는 참으로 다른 나라에 죄 없이 부끄러운 참담한 일인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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