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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과 한국군   역사와 호국정신
파월 국군의 희생이 대한민국 재건에 미친 공헌 자료실 입니다.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15-12-19 (토)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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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 115.xxx.45
[파병에서 철군까지]박정희 “파병 대가 충분히 받아내라”

SOFA협상 등 실리 위해 파병 적극 추진
"한국에 미 핵잠기지 설치 용의" 밝히기도 월 외상
"주둔 연장 감사"밝히자 박 "무슨 소리?"

베트남 파병문제를 검토한 1965년 1월 6일자 대통령 비서실 비밀 문서. 문서 끝부분에 박정희 대통령의“파병이 불가피하나 충분한 대가를 받도록 할 것”이라는 친필 메모가 남겨져 있다.
26일 공개된 베트남전 관련 외교문서에는 베트남 파병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안보, 경제적 실리를 취하기 위해 미 당국과 줄다리기를 했던 대목들이 잘 나타나 있다.
박정희(朴正熙) 대통령은 집권 초부터 미국의 원조를 얻어 경제성장과 안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기 위해 국군의 베트남 파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특히 미국이 전투병 파병을 요청하기에 앞서 우리 정부당국이 먼저 전투병 파병을 적극 검토했던 것으로 외교문서에 나타나 있다.
1965년 1월 6일자 대통령 비서실 보고서엔 베트남 파병에 대한 우리측의 고민과 ‘계산’이 드러나 있다.
당시 양달승 정무비서관은 ‘베트남 파병문제에서 고려돼야 할 문제점’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미국의 파병 요청 저의(의도)가 “각하(박 대통령)의 독일방문 이후 미국은 월남파병 문제 제기를 계기로 한국의 미국에 대한 충성심을 테스트하는 듯함” “미국은 한국군이나 필리핀군을 투입해 미 지상군과 대치시키고 미국 내외에서 비판을 받고 있는 이 전쟁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 대통령은 이 보고서 말미에 친필로 “파병은 불가피하나 의용군(義勇軍)의 형성을 취하고 충분한 대가를 받도록 할 것”이라는 메모를 남겼다.
병 청룡부대 사열 1965년 9월 20일 박정희 대통령이 베트남에 파병될 청룡부대(해병2여단)를 사열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또 베트남 파병을 무기로 1962년 협상 시작 이래 진통을 겪었던 한미행정협정(SOFA) 협상에서도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전략을 세웠다.
1965년 2월 2000여명의 비(非)전투병 ‘비둘기부대’가 파병된 뒤인 그해 3월 김현철 주미대사는 휠러 미 합참의장에게 전투병 파병을 요청할 의사가 없는지 문의하면서 아울러 한국에 미 핵잠수함 기지를 설치할 계획이 없느냐고 물었다. 한국 내 핵무기와 관련, 1970년 미 의회에서 열린 사이밍턴 청문회에서 의회측이 한국 내 핵무기 저장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를 묻자 포터 주한 미대사는 “공동이익을 위해 미국이 필요로 한다면 핵무기의 한국 내 저장을 허용할 것이라고 박 대통령이 말한 바 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미측과 줄다리기 끝에 66년 3월 베트남 파병의 대가로 ▲전쟁물자 및 용역의 한국 제공 ▲한국군 장비 현대화 ▲차관제공 등 미국의 한국에 대한 경제·군사적 지원계획을 담은 ‘브라운 각서’를 받아낼 수 있었다. 브라운 각서 등에 따라 1968년 말 우리 정부는 미측에 M-16 소총 10만정 제공 및 공장 건설, 전폭기 17개 대대, 전략 공군기지 건설 지원 등을 긴급 요청했고, 미측은 요구 장비의 85% 수준을 응낙했다.
1971년 이후 파월 한국군 철수 과정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우리 정부는 당초 72년 말까지 완전 철군할 계획이었으나 미국과 베트남의 반대로 지연됐고, 73년 3월에야 모든 부대가 철수했다.
이 과정에서 72년 6월 15일 람 베트남 외상이 한국군 철수 연기를 요청하는 티우 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한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며 “한국군을 73년까지 계속 주둔시켜 우리를 도와주게 하신 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하자 박 대통령이 “73년까지라니?”라며 어이없다는 듯이 반문한 것으로 당시 회의록은 밝히고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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