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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군 베트남참전과 미 제2사단의 귀환![]() 1968년 북한군은 비무장지대를 침입하였고 1969년 4명의 제23보병연대 제3대대 소속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북한은 미 제2보병사단이 대항했을 때 자신들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크다고 판단하여 1970년 즈음엔 계획된 기습들을 그만두었다. 1971년까지 대한민국 국군은 비무장지대 근방 500야드를 제외한 지역들을 방위하였고, 그 지역들은 미 제2보병사단의 책임하에 기습에 대비하여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1976년 8월 18일 공동경비구역에서 나무의 가지치기를 하던 아서 보니파스(CPT Arthur G. Bonifas) 대위와 마크 버렛(1LT Mark T. Barrett) 중위가 북한군의 공격에 목숨을 잃었다. ![]() 1980년대와 1990년 초기에 미 제2보병사단 장병들은 비무장지대를 끊임없이 순찰하였다. 냉전이 끝남과 동시에 미 제2보병사단 장병들은 1992년 비무장지대를 떠났지만 잔류 부대는 여전히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두터운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1994년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의 죽음으로 한반도에 다시 긴장이 흐르기 시작하였다. 이 당시 북한은 핵개발로 세계를 위협하고 있었다. 대한민국을 수호한 공로를 치하하는 의미로 미 제2보병사단은 1982, 1994, 1999, 2011년에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부대표창을 수여받았다. 한편 1995년 3월 미 제2보병사단 소속 제3여단은 제1군단의 소속으로 포트 루이스 (Fort Lewis) 주둔지에서 재결성되었다. 2000년 5월 편성된 이 부대는 육군의 첫 스트라이커 전투여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위키백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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