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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과 한국군   역사와 호국정신
파월 국군의 희생이 대한민국 재건에 미친 공헌 자료실 입니다.
작성자 참전자
작성일 2015-04-28 (화) 20:15
분 류 음해
ㆍ추천: 0  ㆍ조회: 873      
IP: 115.xxx.45
민간인 학살론 과 베트남전의 한국군-4
  1980년 11월 14일 한국방송협회, 신문협회등은 총회를 열고 방송, 신문 통합 등 소위 '대한민국 언론의 개혁'을 골자로 하는 건전 언론 육성과 창달에 관한 결의문을 발의했다.
 
  당시 신군부로 정권이 바뀌면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행해진 이른바 ‘언론사통폐합’에 의해 933명의 해직 기자가 발생하면서 해직기자들의 모임을 통해 한겨레신문이라는 바람직하지 않은 언론사 하나가 탄생한다. 한겨레신문은 탄생 과정부터 세상에 대한 부정적 트라우마를 뇌구조에 가지고 태어났다. 사회문제와 역사를 사시로 볼 수밖에 없는 생리를 기본적으로 가지고 태어난 것이다.


  전두환 대통령이 후일 법정에 설만큼 문제 있던 정권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군부에 대한 피해, 군부! 곳 박정희 전두환 정권 이런 연결 고리를 기초 인식에 깔고 그 시대에 있었던 역사는 공적(功績)과 악적(惡績)가리지 않고 비난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박정희 대통령 시대 공적이라 할 베트남파병은 그들이 헐뜯을 적재이고 맛있는 먹을거리였다. 그런데 이들이 적대시하여 행하는 월남전참전 한국군에 대한 난도질은 자신들이 패륜행위를 하고 있다는 인간의 윤리 도덕적 문제를 간과 하고 있다. 베트남참전의 32만 참전자는 자신들의 형이요 아버지인 것이다. 이 잘못된 언론인들이 2000년 베트남유학생으로 있던 구수정이라는 어린 여학생 하나를 베트남 통신원으로 채용해 이용 하면서 자기 글이 신문에 연재되는 황홀한 자부심에 빠지게 하여 자기 조국의 위상을 깍 아 내리고 갉아먹는 광적인 여자로 키워간다.

  그러나 현명한 대한민국 국민은 그런 패륜 행위에 동의하지 않았고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 이들이 더 이상 할 일을 잃고 잠잠하게 세월이 흐르는 사이 다시 구수정을 이용해 먹을 한겨레신문의 후신이 나타나는데 그가 성공회대학교 교수인 금수저 좌파 한홍구이다.


  한홍구 : 미국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항일독립투쟁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하는 일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 자를 옹호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으로는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의 양민학살 폭로,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실현과 국가정보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위한 활동 등을 하고 언론 활동으로는 주로 한겨레신문, 프레시안 등에 논설을 투고하는데, 한겨레21에 투고한 글들은 ‘대한민국 사(史)’라는 책으로 현재 4권까지 출판되었다.  한홍구의 김일성 중심사적 학습행위로 봐서 그의 저작물이 대한민국사로 이름 매겨진 것은 한국사 왜곡 교육이 매우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 한홍구가 이번 베트남인 2명 초청을 주도해 일을 꾸몄다.
 
현재 겉으로 평화의 가면을 쓰고  대학교수, 박사, 변호사, 예술인, 언론인, 신문사등 팀을 이루어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역사와 문화에 흠집을 내고 패륜을 저지르는 일로 살아가는 인격 실종자들의 면면을 모면 다음과 같다.

  구수정 : 처음 베트남에 발을 디딘 것은 1993년, 만 27세에 한신대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진보적 학술잡지 <사회평론>에서 일하다가, 선배를 따라 김대중 선거캠프에 잠시 일했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공산주의' '사회주의' 사상실현이 어려워져 사는 게 문득 역겨워졌다. 베트남으로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 어머니가 만류했지만 구수정의 고집을 꺾진 못했다. 호치민시 청년문화회관은 청년공산당 직속기관으로서 베트남 청년들의 사상문화적 교육훈련과 오락의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35개 청년클럽이 운영되고 있으며 소속회원만도 5천여명에 이른다.
 
‘구수정과의 교류’ 행사는 약 1시간 반 동안 진행됐다. 베트남 청년들은 ‘한국군 양민학살의 모든 것’에 관해 구수정 통신원에게 질문했으며 자신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이 자리에 참석했던 10여명의 한국 유학생들도 베트남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한 뒤 ‘사죄’의 뜻을 전했다. <한겨레21>은 행사의 주요내용을 요약했다.<한겨레21>에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양민학살 사건기사를 보낼 때 그는 호치민대에 다녔다. 한국군 폄훼를 위해 기록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고. 1999년, <한겨레21>이 피해자를 위한 모금운동과 함께 연재하기 시작한다. 이듬해 6월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가 보도에 격분해서 한겨레 사옥에 난입한 일도 있었고, 2000년 제주인권학술회의에는 행사를 막으려고 베트남 참전 군인들이 몰려가기도 했다.


  고경태 : <한겨레21>기자 베트남 양민학살의 첫 기사는 99년 9월 호치민 통신원 구수정이 보내는 글을 그해 10월부터 캠페인 연재기사로 실었다. 이때부터 군사 정권의 공적을 흠집 내기 위해 국가 의식도 전쟁의 당연한 상식도 버린 채 베트남전 역사를 자신들 시나리오에 맞게 짜깁기 하여 시중에 살포한다. 나머지 패륜자들의 면면은 본문의 집중도를 위해 그 기술은 다음으로 미룬다. 
 
 이들 베트남전 음해세력이 내세우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문답으로 풀면 다음과 같다.


  음해 세력 일당(갑)의 주장
기본적으로 월남전참전 한국군에게 국제법적, 국내법적 윤리적, 도덕적 책임은 일체 없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주장은 음해를 주도하는 구수정의 개인 사업과 신문사 이익을 챙기기 위해 한겨레 일당이 무고한 베트남전참전 한국군에 정서적 폭력으로 괴롭히는 갑질 이며 대한민국 국가와 베트남참전 한국군(을)에게 인격(윤리 도덕)적 책임을 뭇고 있는 말도 안 되는 갑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갑)은 (을)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갑)베트남전에서 왜 민간인을 학살 했는가?
  ==(을)전투 중 살상은 피아간에 있는 일이고 학살은 한바없다. 전투 중 살상을 학살이라고 한다면 한국군도 5,099명이 학살당했다. 모든 전쟁에서의 모든 살상행위가 사납게 일어남으로 학살(虐殺)이나 살상(殺傷)이나 별 다른 의미는 없다.

  ==(갑)민간인 살상을 얘기하는 것이다.
  ==(을)베트남전에서 민간인이 총을 든 공산민병대(베트콩)가 연합군의 주적이었다. 적은수의 월맹 정규군과 교전이 아니면 대부분이 민간인 외모를 하고 있는 베트콩과의 전쟁이었다. 따라서 많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은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

  ==(갑)왜 한국군이 남의나라 베트남에서 살상을 저질렀나, 침략 아닌가? 
  ==(을)베트남 동포(자유월남)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갑)한국도 미군의 노근리 학살에 대해 사과와 보상을 요구하지 않는가?
  ==(을)미국과 한국은 당시 우방이었고 현재도 우방이다. 우방 간에는 인격개념 즉 윤리 도덕률의 상호 성립이 가능하다. 우방국 군이 우리 국민에 고의 던 과실이던 위해를 가했다면 그것은 아군 또는 아 국민에 위해를 가한 범죄행위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 하고 사실에 따라 보상 등의 논의가 가능하다. 우리가 일본에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은 일본은 우리의 적이었으며 패전국이기 때문이다. 패전국의 전쟁당시 전투 행위는 모두 범죄행위가 된다. 다만 그 책임은 하급 병사들에게는 뭇지 않으며 군 지휘자와 국가 통치자에게 지운다. 아군과 적국 간에는 힘의 논리는 존재해도 인격 이론은 성립하지 않는다. 인격이론이 작동하는 관계는 적대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격이론이 상실된 대립관계를 ‘서로 싸우거나 해치고자 하는 상대’ 즉 적(敵)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 당시 적이었던 현재 베트남사회주의공화국은 대한민국에 사과나 피해 보상을 논할 수 없다.

  ==(갑) 퐁니・퐁넛 학살은 무엇인가.
  ==(을) 당시 작전에 참여 하였던 1중대의 1소대장 최영언 씨는 “갑자기 마을로부터 선두 1소대 병력 쪽을 향해 사격이 날아왔다. 순간적으로 모든 소대원들이 수풀 바닥에 엎드렸다. 누군가 한명이 총에 맞아 부상당한 듯했다. 중대장 김석현 대위에게 긴급히 무전을 쳤다. 중대장의 응답은 마을을 공격하라는 것이었다. 이 사건 후 마을 주민들이  언론에 공개 하고 행정 관청에 달려가 어떤 사람들은 "한국군 복장을 한 군인들이 마구 총을 쏴 사살 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늘에서 포탄 십 수 발이 떨어져 사람들이 죽었다" 면서 아우성을 치고, 사이공 정부와  요로에 탄원서를 제출 하면서 격렬한 항의 시를 해 월남 사회가 발칵 뒤집혔다. 당시 탄원서의 내용들은 미국의 군사 전쟁 문서에도 기록 되어있다. 혹시 한국군이 관련 된 것이 아닌가 하여 박정희 대통령특명에 의해 그 당시 작전을 수행했던 장병들을 전문 조사원을 투입해 여러 차례 강도 높은 조사를 실시했다. 그날 한국군은 적군이 은둔해 있던 산 중턱에 함포 사격 관측을 위해 배치되었던 미군들과 함께 주변의 수색 임무를 수행 하던 중 마을 입구에서 우리 군이 부비트랩으로 피해를 입자, 상부로부터 진입 허가를 받고 마을 안으로 정찰하면서 통과 했을 뿐이라는 장병들의 진술들이 일관되어, 정확한 진상을 규명하지 못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월남 사이공 정부와 미국은,  주월 미군 사령관 웨스트 모얼랜드 장군의 요청에 의해 미, 월 군사 합동 특별 조사단을 구성해,  사건 현장에서 심도 있는 물증 조사 등을 수차례 벌였으나  한국군이 학살 사건에 연루 되었다는 확증을 얻지 못하고, 한국군 복장으로 위장한 적군의 소행인지.  아니면,  월남전에 참전 했던 북괴 심리전 특수군 전술에 의한 침투 공작 인지, 의문만 남긴 채  종결 된다. (갑)이 전쟁터라는 상황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적 쪽의 주장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갑)지금 베트남과 한국은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있다. 지금도 적인가?
  ==(을)현재는 현재이고 과거는 과거다. 과거의 문제를 현제의 잣대로 해결 하려는 것은 양자의 가치체계에 근본이 다르고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각자모두 자체적으로 해법이 나올 수 없다. 그들이 이념을 바꿔서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경우 <과거를 덮고 간다.>는 역사의 ‘매장법’을 선택한다. 그런데 그들은 현재도 당시 적성국의 유사한 이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서로 필요해서 인적, 경제적 교류는 하지만 이념이 우리와는 이질적인 사회주의 체제로서 국가적 친의의 수준은 낮을 수밖에 없고 옛 적성국의 인식은 저변에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남, 북한이 같은 민족으로 간헐적 교류를 이루면서 대적관계가 유지되는 것과 같다.

패륜행위 넘어 매국행위로

  광적으로 베트남전사 왜곡과 훼손을 일삼던 이들은 이제는 이성을 잃고 자기 조국에 대한 매국행위로 진화 하게 된다. 이들은 2015년 4월 행사에서 자신들 주장대로 학살 피해자라고 하는 2명의 베트남인을 데려 오면서 “이번 초청은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할머니들의 첫 일본 방문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


  이 말은 한국군도 베트남전에서 일본군과 같이 여성 성폭력을 조직적으로 저지른 군대라는 것을 위안부 할머니들을 끌어드려 설명 하려고 하는데 한국군이 일본군과 같이 위안부를 집단으로 수용해서 노리개로 삼았다는 근거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군은 본래 의도적으로 민간인을 표적으로 학살한 사실도 없을 뿐만 아니라 더욱 위안부들을 모으고 노리개로 삼아 성폭력을 저지른 그런 일본군 같은 패륜 행위를 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연합군의 작전이 실시간으로 세계 뉴스 미디어에 타전되는 개방된 전쟁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특히 일본군처럼 침략군이 아닌 월남 국민을 도와 주기위해 간 한국군이 그런 잘못을 왜 저지를 것인가? 한국에서 6.25직후 미군부대 주변에 기지촌이 형성되고 이름 하여 ‘양공주’들이 성매매를 위해 집단을 이루었듯이 월남에서도 시내에 나가면 골목골목에 그 같은 시설이 널려 있었다.

  안타까운 일은 이들의 분별없는 행동에 그러지 안아도 가슴 아픈 일본군 성 피해(위안부라는 표현도 불경스럽다.)할머니들의 행보에 먹칠을 하고 일본의 입장을 두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베트남에 사과하지 않는 한국이 일본을 비난 할 수 있는가”라고 일본의 입장을 당당히 변호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도 ‘독도’를 우리 땅이라고 하면서 일본이 중국 땅 센카꾸 열도를 자기 땅 이라고 하는 게 뭐가 잘못인가?”하는 말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4월 5일 나눔의 집을 방문한 날 동행한 한홍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베트남 한국인 민간인 학살 피해자들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과거 잘못을 사죄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베트남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을 인정하고 사죄해야 한다."고 전사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역사를 억지로 조합해 상식이하의 괴변을 늘어놓고 있다.
 
  패전국도 아닌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에도 사과 할 의무도 이유도 없다. 따라서 현 베트남 정부도 우리에 대해 사과를 요구할 권리가 없다. 베트남 전쟁의 전 희생자에 대해 참전 장병들에게는 어떠한 책임도 없으며 이념적으로 싸우도록 이유를 제공한 이념이론 창시자들과 전쟁에 참전한 전체 국가들에 그 책임이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내 베트남참전 음해세력이 당시 참전용사들에 대해 명예 훼손에 의한 정서폭력을 가하는 것은 대한민국 법률의 맹점을 이용해 사건 구성을 교묘히 피하면서 국민을 기망하고 그것으로 사업을 이어가는 도덕적 패륜행위이고 교단과 언론사를 이용해 팀을 이뤄 자행하는 불량한 성격 자 들의 불법적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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