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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전과 한국군   역사와 호국정신
파월 국군의 희생이 대한민국 재건에 미친 공헌 자료실 입니다.
작성자 참전자
작성일 2015-04-24 (금) 03:45
분 류 음해
ㆍ추천: 0  ㆍ조회: 585      
IP: 115.xxx.45
민간인 학살론 과 베트남전의 한국군-2

전쟁터에서 사람이 살상 되는 것은 어느 전쟁터에서나 다 있는 일이다 그것은 격전이 치열한 전장인 이상 불가피하다. 당시 베트남에 참전한 32만 명의 한국군은 11년 전 6.25라는 전쟁에서 인명살상에 무자비함을 현장에서 겪었고 전쟁의 인간을 향한 학대가 얼마나 엄청난가를 몸소 보고 체험한 세대로서 인간 세상에 전쟁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지만 그것은 패권 주의자들의 평화 파괴 행위를 격퇴 해야만 가능함을 또한 뼈저리게 느끼고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파월장병이 먼저 겪었던 6.25란 어떤 전쟁 인가? 전쟁사는 한반도 전쟁을 공산주의 북조선이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불법남침 함으로서 발생한 이념 전쟁이라고 말한다. 이념 전쟁을 단순히 보면 사상의 차이 때문에 또는 상호 자기 생각을 따르지 않아 부딪치는 갈등 때문에 일어나는 전쟁으로 생각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이념이 잘못된 것일 때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무서운 기능을 가지고 있는데 그 위험한 이념을 권력을 쥐기 위해 악용해서 자기 국민을 속이고 상대를 불법으로 침공 하는 자와 그런 세상에서는 살 수 없다고 죽음을 무릅쓰고 거부 하는 쪽이 대립 하면서 시작 된 것이 20세기 냉전 이념전쟁이고 곳 6.25 전쟁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6.25전쟁은 인간이 인간답게 사느냐 인간다운 삶을 포기 하느냐 하는 절박한 삶의 문제를 담고 있었다.

 

20세기 한 시대 세계를 양분했던 이 두 이념에서 공산주의를 정치체제로 했던 나라들이 5~60년 후에 모두 망하고 국가가 파탄 나서 국민이 굶어죽을 위기에 처한 후에야 자유 민주주의 전유물인 자유 시장경제체제로 바꾸고 위기를 벗어나게 된다. 여기서 공산주의가 그리고 사회주의가 얼마나 위험하고 천박한 이념인지 백일하에 증명이 된 것이다. 공산주의의 사상적 허구성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마르크스, 엥겔스의 자본론이나 헤겔의 변증법유물변증법을 개념분석을 통해 그 허상을 실증 할 수 있지만 철학적인 이론보다도 더 정확한 것은 현실이고 사실이다. 그 예를 우선 6.25전쟁을 영화화한 2014년 영화 국제시장에서 19501215일 십만의 민간인과 군인이 공산주의 북조선에서 흥남부두를 탈출 하는 장면은 사실이었고 그 후 1975년 베트남에서 한국군 등 연합군이 돕던 자유 월남이 정치력 부재로 망하면서 공산 월맹정권이 어부지리 승리를 하고 통일이 되었지만 국민이 통일조국을 등진 채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로 뛰어든 90만 명의 보트 피플과 캄보디아와 라오스로 국경을 넘어 탈출하는 20만 명의 랜드 피플을 상기해 보면 그들은 왜 공산주의자들이 그토록 아름답다고 말하는 민족통일조국을 버리고 바다로 국외로 탈출을 시도한 것일까를 상기해 봐야 하는 것이다. 통일된 그날부터 110만의 국민이 탈출하는 공산주의의 반민족적 허구성에 더 이상 이론적 분석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한국군과 연합군은 그런 베트남국민의 불행을 막아주기 위해 참전하였지만 자유월남 정부의 무능으로 스스로 무너져 공산정권에 통일 베트남을 넘겨주게 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공산주의 정권들이 패망이후 사회주의로 한 단계 낮은 집단주의를 채택하였듯이 베트남도 통일 후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집단주의 정치를 이어가지만 올바른 길은 정상적인 국가를 향해 하루 빨리 자유 민주주의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용감했던 이유

1950년대 대한민국의 큰 특징은 6.25전쟁에 의한 전쟁 트라우마절망적인 가난이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6.25전쟁으로 전쟁 기간 동안 남북을 합쳐서 약 200만 명 이상이 사망 또는 실종된 것으로 추정되며 국토의 80%가 초토화 되었다. 조선시대 이전부터 천년을 이어지던 가난은 6.25전쟁으로 더욱 열악해져 온 국민 거지꼴의 절망 상태 그것이었다. UN 지원국의 도움으로 의, , 주를 해결하며 미군이 버린 쓰레기통을 뒤지고 꿀꿀이죽(미군식당에서 버려진 잔반을 다시 끌인 음식, 돼지죽이라는 의미)’을 길거리에서 사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던 1965GNP100시대, 당시 현역 장병들에 베트남참전의 명령이 떨어졌다. 6.25의 공포 때문에 굶어도 전쟁터는 가기 싫다고 지휘부 명령에 반항도 했지만 지엄했던 군의 명령에 하는 수 없이 전쟁터로 떠날 수박에 없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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