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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곡
작성일 2012-06-25 (월) 07:22
홈페이지 http://blog.chosun.com/whagok22341
분 류 화곡
ㆍ추천: 1  ㆍ조회: 11573      
IP: 115.xxx.218
내가 겪은 6.25(48)
내가 겪은 6.25(48)

37. 장승포 항에서의 아버지와 만남


11월 1일 나는 권상사 아저씨의 지프차를 타고 거제리 부대에서 서면을 지나 자갈치 시장 뒤편에 있는 거제도 장승포행 여객선 개찰구에 도착했다. 배 터까지 올 때에 얼핏얼핏 밖을 내다보니 자동차가 길에 가득하고 사람들이 길 양쪽으로 빼곡하게 다녔다. 시골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다. 하기야 전국 각처에서 피난민들이 모두 다 부산으로 몰렸다 할 정도였으니 북적거리기가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그런 도시였다. 권총을 찬 헌병 권상사 아저씨의 손에 이끌려 개찰 조사도 없이 나는 무임 승선했다. 개찰하는 아저씨가 순간 나를 보고 또 헌병 권상사 아저씨가 내미는 증서를 얼핏 보더니만 검사도 않고 그대로 통과시켜 줬다.


배가 출발하고 여객선 밑바닥 객실 안에 누워 잠만 자는 아저씨 옆에 있던 나는 갑자기 지루하고 호기심이 나서 갑판 위로 슬그머니 올라갔다. 그 날은 파도가 그리 세지 않았고 바다 경치가 좋았다. 하얀 갈매기가 나는 것도 구경하고 우리 배 옆을 지나는 배도 구경했다. 지나가는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대니 우리배의 승객들도 손을 흔들어대고 있는데 처음 보는 장면이라 재미있었다.


배의 맨 앞에

부산 자갈치 항

서서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물살을 내려다보는데 갑자기 누가 내 어깨를 툭툭 치는 것이었다. 뒤돌아 쳐다보니 배의 선원인데 나를 보고 배표를 보여 달라는 것이다. ‘배표?’ 배표가 무엇인지도 몰라 아저씨를 그저 멍하니 쳐다만 보는데 갑자기 그 아저씨가 커다란 손으로 나의 왼쪽 뺨을 사정없이 때리는 것이다. 눈에서 불이 번쩍 났다. 선원 아저씨가 고함을 치면서,


“야! 이느무 짜슥아! 배표도 없이 배를 타? 너 같은 놈 때문에 통일이 안 되는 기라!”

하면서 내 멱살을 잡고 파도가 부딪치는 뱃전 밖으로 빠뜨릴 기세였다. 갑자기 나는 내가 그렇게 갈망하던 우리나라 통일의 방해꾼이 된 셈이다. 어처구니없는 순간이었다. 그 선원 아저씨는 내가 무임 승선을 전문적으로 하는 아이로 간주한 것이다. 너무 겁이 난 나는 얼른 둘러댔다.

“아저씨! 우리 아저씨가 군인 헌병 상산데요. 저 배 아래 있는데 아저씨가 표를 가지고 있어요.”

그러자,

“빨리 가서 가져오너라.” 했다.


나는 잔뜩 겁에 질려 선창 아래 객실로 내려갔는데 권상사 아저씨는 여전히 코만 드르렁 드르렁 골면서 깊은 잠이 들어 말도 붙이지 못하였다. 갑판 선원아저씨에게 혼쭐이 난 가슴도 달래지 못하고 하는 수 없이 권상사 아저씨 옆에 쪼그리고 숨는 듯 누워 홀연 잠이 들어 장승포 항까지 갔다.


권상사 아저씨가 다 왔다고 내 손을 끌었다. 선원 아저씨에게 뺨 맞은 거고 뭐고 금세 다 잊어버리고 아버지를 만나면 드리라고 할머니가 챙겨 준 각종 곡식 주머니가 든 배낭을 허겁지겁 챙기기 시작했다. 조그마한 아이가 어른들이 입는 군복을 아래위로 소매 발목께만 몇 번씩 접어서 입고, 커다란 군인모자에 검정고무신을 신고 흰 배낭을 진 모습이란…….


참으로 내 행색은 완전히 거지보다 더 이상한 꼴이었다. 군인 헌병 손에 이끌려 선착장에 내린 나는 어리둥절하고 두리번거리다가 또 한 번 크게 놀랐다. 내가 내리는 저 앞쪽 양 옆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나보다 큰 형들이 죽 늘어서서 나를 향해 박수를 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열렬히 환영하는 모습으로 웅성거리며 여기저기서 만세 소리도 들렸다.


권상사 아저씨가 “네 아버지가 저기 계신다”고 했다. 배표 받는 입구에 아버지가 있다는데 사람들이 하도 많아 나는 잘 찾지를 못했다. 보고 싶은 아버지와의 만남을 이 순간 어떻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저쪽에서 사람들 가운데로 양팔을 벌리고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오는 아버지, 만면에 웃음과 눈물을 담은, 꿈에라도 보고 싶었던 아버지가 제지하는 선원을 뿌리치고 개찰구를 타고 넘어 나를 향해 “찬수야―!” 하고 이름을 부르며 달려오는 것이었다.

아버지를 향해 울면서,





“아버지!”

하며 달려오는 나를 와락 끌어안고,

“찬수야! 찬수야! 찬수야! 어디보자!”

하며 아버지는 한참 어쩔 줄 몰라 했다. 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어루만지다가 갑자기 일어서면서 양팔을 치켜들고,

“만세! 만세!”

소리쳤다. 아버지는 평소의 정신이 아닌 듯했다. 양팔을 치켜든 아버지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함은 이렇게 대단했다. 부자가 전쟁 통에 까마득한 곳에 생사도 모르고 떨어져 있다가 엉뚱한 객지에서 기적적으로 만나 대성통곡을 하니 갑자기 그 날의 장승포 항의 부두는 피난민들의 눈물바다가 되었다. 박수를 치던 형들과 마중 나온 아저씨들이 박수를 치면서 모두 우는 것이었다.


정든 고향을 두고 갑자기 월남한 피난민 모두의 울음은 참으로 6ㆍ25 동란의 상처를 입은 우리나라 남북 이산가족 모두의 눈물이었고, 수많은 의미를 간직한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한 울음이었던 것이다. 배에서 일하는 억센 사투리의 경상도 아저씨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고 아마 나의 따귀를 올려붙인 아저씨도 그때 와서는 다 알고 아마 이해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아버지는 나의 손을 꼭 잡고 눈물만 흘리면서 연초 면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아버지는 고향에 남아 있는 할머니 안부를 여러 차례나 물었다. 할머니가 얼마나 보고 싶으면 그러했을까. 많은 어른들과 학생들이 나를 환영하러 장승포 항까지 왔다가 모두 함께 연초 면으로 돌아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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