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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화곡
작성일 2012-06-11 (월) 08:34
홈페이지 http://blog.chosun.com/whagok22341
분 류 화곡
ㆍ추천: 0  ㆍ조회: 14264      
IP: 115.xxx.218
기심이/수필
기심이/수필





나의 아내는 옥수수를 좋아한다. 올해도 돌각사리 넓은 밭 두렁에 옥수수를 제일 많이 심었다. 농사 때 가장 힘드는 일은 잡초제거이다. 특히 바랭이란 풀은 순이 나올 초장에 제거해야지 조금 컷다하면 여간 골치거리가 아니다. 오늘 오후 내가 새소리만 들리는 농사터 밭 한구석에서 잡석(雜石) 제거를 하고 있을 때였다.

조용한 안막골 먼발치에서 갑자기 아내 목소리가 들렸다.



'에~잇'!

좀 감정이 섞인 짜증스런 내질음이었다.




무슨 일 인가 하여 슬며시 다가가 보니 밭두렁 앉은 자리에서 아내가 호미로, 왕창 부러져 아깝게 짤린 햇 옥수수 대궁 옆 흙바닥을 평소 모습과는 다르게 힘을 실으며 마구 짓 이기고 있었다. 기심이란 놈을 들춰 내어 죽이는 중이라 하였다.



평소 내 아내는 명랑한 편이고 무슨일이 터져도 갑짜기 소리까지 지르며 감정 표출을 잘 하지지 않는 편이다. 그러나 오늘은 달랐다.





'에~잇! 이눔의 기심이!

화가 잔뜩 난 표정이었다.





기심이란 벌레는 큰 놈은 2cm 가량 크기의 좀 가늘면서 시커먼 색의 징그런 벌레이다. 땅속에 산다. 봄에 햇곡식을 심어 놓으면 주로 고추나 옥수수 싹등 말 갛고 야들야들하게 자라는 대궁을 싹뚝 잘라 놓아 초장에 더이상 키가 크지도 않게, 때로는 옥수수 같은 경우엔 아예 잘린 포기를 말라죽게 만드는 고약한 벌레이다. 싹뚝 잘라 놓곤 대궁이에서 나오는 즙을 빨아 먹는 모양이다. 농사꾼 약 올리기 일등 벌레라 할 만하다.





내 보아 온 짐작에 여성들은 다 그렇드시 아내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도 벌레의 '벌'짜 소리만 나와도 십리밖으로 내달리며 도망칠 기세의 호들갑(?)을 떠는 주인공들 이다. 그런데 오늘 호미로 짓이기며 땅바닥의 기심이 죽이는 아내의 기세는 그게 아니다. 그 옆에서 잘못 했다간 호미든 기세에 날벼락 같은 봉변을 당할 그런 눈을 부릅 뜬 사나운 기세이다.





초등학교 어린 시절 아내는 이웃에 사는 일가 4촌, 6촌 언니와 다정했다. 학교도 같이 다니고 농촌 마을에서도 친하게 놀았다. 어느날 6촌 언니가 아내를 놀리 느라고 세잠 정도 잔 커다란 누에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집어 아내 목덜미에 언져 놓으려는 시늉으로 장난을 걸었다. 어린 그 때에도 아내는 기절 할 드시 놀라 고함까지 지르며 도망을 쳤다. 짓궂은 언니는 따라 오면서까지 장난을 하였다. 그때도 좀 실했는데 학교에서 달리기 경주 땐 항상 맨 꼴찌로 들어오는 아내 였다지만 벌레 앞에선 육상 선수인 언니 보다 더 재빠르게 총알처럼 내달려 도망질을 하였다 한다.





1986년 나의 아버님은 병환에 계셨다. 여의도 성모 병원에 입원 했을 때인데 누가 이르기를 생사탕(生巳湯)을 복용시켜 드리면 효과가 좋다 하였다. 그당시도 구렁이나 독사 특히 칠점사등 약효가 있다는 뱀은 비싼 기세가 집 천장을 뚫고 나갈 정도여서 왠만한 사람들은 감당 하기가 매우 어려운 때였다.





전국적으로 소문난 용문산에 있는 K라는 뱀탕집을 찾았다. 다급한 마음에 이것 저것 골라 몇 상자분 생사탕을 주문하곤 초조히 기다릴 때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생사탕 조리하려 뱀을 취급하는 이가 주인 사장이 아니고 그분의 아내 되는 이였다. 젊은 분이었고 얼굴이 뽀얗게 생겼는데 내 짐작에 서울 도시 어느 한복판에 나서도 '나보다 잘 생긴 여자 있으면 한번 나와 보라' 하며 뽑내어도 아무도 대들지 못 할 그런 용모였다.





그런데 비싼 값으로 매매 되는 뱀이어서 그런지 영업 정신이 왕성해서 인지 내 앞에서 미인 아주머니가 흉칙스런 뱀을 아무렇지 않게 떡 주물르 듯 하였다. 두번째 탕을 준비 할 땐 먼저 처럼도 아니고 고무 장갑도 끼지 않고 아예 맨 손 가락으로 엿가락 집어 올리 듯 하였다.


내심으로 나는 무척 놀라며 한편으로 감탄하였다.



'햐~!' 돈 앞에는 무서운 것이 없구나....!





기심이란 벌레는 좀 무섭게는 생겼지만 새끼 손가락 반 도막도 안되고 또 아주 가냘프다. 호미로 슬쩍 눌러도 호미 무게에 견디지 못하고 죽는 벌레이다. 그런데 자기가 애지중지 키우는 옥수수 대궁이 싹뚝 잘려 나간 옥수수 어린 대궁을 보는 순간 아내의 분노는 충천하였다. 기심이가 숨어 든 잘려나간 옥수수 대궁 옆 흙속을 뿌리께 까지 제치고 기어이 고약한 벌래를 찾아 내어 호미로 마구 짓 이기고 있었다.

좀 과장 된 표현으로 말해 본다면 그 적개심 정도가 나의 어린 시절 군인 아저씨들의 목격담을 연상케 했다. 6.25전쟁 때 동해 중부전선 설악산 전투에서 동료장병이 적군들로부터 목숨을 잃어 전사한 것을 목격하고 전우잃은 슬픔이 분노에 차 고지 탈환 '돌격 앞으로' 할 때 기세 등등한 우리국군의 분노에 찬 모습이 연상되었다.





평소 아내가 저렇게 무서운 줄은 정말 몰랐다. 옥수수 대궁 아까운 마음에 화를 바짝 내며 호미 날씬하게 휘두르는 폼이 마치 조국을 수호하는 일념의 돌격(突擊) 앞으로 대열의 소대 장병들 같다는 느낌이었다. 2012. 6. 9. 춘천에서 대정수 포럼 공동대표 화곡 김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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