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주의 안보 정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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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광덕
작성일 2012-06-24 (일) 17:34
분 류 인강
ㆍ추천: 0  ㆍ조회: 1316      
IP: 116.xxx.38
6.25 62주년 德友會 강연

            대한민국의 최근 위기시작은 1997526

           한반도 최초의 자유민주혁명은 대한민국 건국

 

* 사무총장님으로부터 강연 요청을 받은 저는 극구 사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곳은 제가 배우러 올 곳이지 이야기 할 곳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권위 있는 두 분추천했더니 두 분 다 이미 다녀가셨다고 하면서 회장님과도 상의를 해서 결정했으니 4.3위원으로 활동했던 경험담 들려주시면 된다고 해서 더 버티지를 못한 채 여러분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나라 대공분야의 전문가들 앞에 서게 된 것은 제 생애 최대의 영광이며 영광을 주신 고성진 덕우회 회장님과 회원 여러분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 그러면 제가 4.3위원이 되었었고 어떤 고뇌가 있었고 왜 4.3위원을 사퇴했으며 진상조사보고서의 문제는 무엇이며 이 문제 발생으로 인한 대한민국 안보의 위기를 극복하는 시급한 대책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4.3사건은 제주 4.3무장폭동, 무장반란, 반란, 폭동, 봉기, 무장봉기 등의 다양한 이름을 불리어 오다가 20001월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면서부터 주로 사건으로 통칭되고 있음은 모두 아시지만 저는 오늘 그 때 그 때 편리한 대로 이름을 사용하겠습니다.

 

* 이 특별법에 따라 국무총리예하에 4.3위원회가 구성되면서 총 12명의 민간 위원 중 국방부에 2, 경찰에 1명 모두 3명의 4.3위원이 할당되었고 당시의 조성태 국방장관은 성우회 추천으로 최초 김점곤 장군과 박창암 장군을 위촉했습니다.

 

김점곤 장군은 박정희 대통령보다 사관학교 1기 선배로서 초대 육사 총동창회장을 지나신 분으로 4.3사건 발생당시 미군정하의 통위부 정보작전과장(정보국장은 백선엽 대령)이셨고 박창암 장군은 제주도에서 폭동진압 특수부대장을 역임했던 관계로 두 분 모두 4.3 당시의 전반적 상황에 정통하신 분들입니다.

 

그런데 박창암 장군4.3특별법의 위헌청구 헌법 소원 시 연대서명을 했던 관계로 위헌청구의 당사자가 그 법에 의한 위원회에서 활동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상부견해와 본인의 사양으로 인해 그 대타를 찾는 과정에서 4.34자도 몰랐던 제가 4.3위원이 되는 묘한 운명을 맞습니다.

 

* 제 운명은 군 생활과 직결이 됩니다. 저는 보병 11사단장 재직 시 부대지휘의 일환으로 전 장병들에게 10년의 인생목표를 설정하고 병영생활을 하도록 독려했었는데 그로 인해 병사들 간에 서로 발전한 모습을 전역 10년 후에 만나서 확인하자는 자발적인 성격의 모임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국방대학원장으로 예편을 할 때에 그 이전 3년간의 미 국방무관 경험 탓으로 저를 불러주는 곳이 있었으나 1년의 사회생활을 한 후에 가기로 약속을 해 놓고 있었던 상태에서 재향군인회로부터 안보정책실장을 맡아 달라는 또 다른 요청을 받고는 향군에 가면 장병들의 전역 10년 후 모임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나름의 판단에서 고심 끝에 사회친구와의 약속을 깨면서 제 운명도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 장태완 향군회장의 안보정책실장으로 박창암 장군을 접했던 연장선상에서 저의 육사생도시절의 생도대장이셨던 박창암 장군의 대타가 되고 말았습니다. 4.3위원이 되었던 배경설명이 좀 길어졌습니다만, 4.3사건에 관한 예비지식이 전혀 없었던 저는 원로 군 선배이신 김점곤 장군과 박창암 장군의 뜻을 받들어 그 때부터 여행도 취미생활도 거의 끊고 4.3사건 연구에 매달려야만 했습니다.

 

3년의 시간을 현역시절보다도 바삐 나름의 노력을 다했으나 당시 대통령 노무현의 4.3사건과 관련한 정부차원의 공식사과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에 앞서 있었던 20031015, 고건 국무총리의 주재 하에서 군과 경찰의 입장이 배재된 진상조사 보고서가 채택되는 현장에서 부동의서명을 하고 국방부와 경찰로부터 위촉되었던 다른 2명의 동료와 함께 동반사퇴를 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용량제한으로 다 올라가지 않습니다. 아래의 파란색 주소에서 인강칼럼을 열면 보이니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총총  인강 배

2012.6.24.

()육 소장

www.rokfv.com 인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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