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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남강
작성일 2012-04-19 (목) 06:19
분 류 남강
ㆍ추천: 0  ㆍ조회: 1886      
IP: 211.xxx.34
밤에 걸려온 전화
 

밤에 걸려온 전화

          시인 남강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인들에게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이란 아마도 저녁 TV앞에 앉아 있는 때일 거다. 이때쯤이면 외부 전화도 거의 없는 시간인데 손 전화벨이 따르릉 울렸다.

“여보세요. 혹시 000선생님 전화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누구신가요?”

“저- 전우신문에 관계하신다는 말을 듣고 드릴 말씀이 있어 전화 드렸는데요…저는 앙케전투에 참전한 사람입니다. 저는 ’72년 4월 23일 638고지 8부 능선에서 8중대 3소대 선임하사였는데 소대원은 다 죽고 저 혼자만 살아남았어요.”

난데없이 40년 전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말이 다소 흥분한 것 같기도 하고 두서가 없는 것이 심상치 않은 예감이 들어 전화기를 든 채 거실에서 서재로 자리를 옮겨 왔다. 그래야 그 인사의 이야기를 차분히 들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아 그렇습니까? 저도 앙케 전투의 상황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4월 23일이면 전투가 막바지 치열하던 때인데 어떻게 된 겁니까? 좀 천천히 말씀해 보세요.”

“예 예... 정말 그때는 너무도 무섭고 억울하고 눈물도 안 나놨어요! 저는 1연대 8중대 3소대 선임하사였는데 다 죽고 저 혼자만 살아남았어요!” 

그이 말씨는 어느 새 격앙되어 있었다. 너무도 하고 싶은 말들을 무던히도 참아 온 것 같았다.

“아아 그래요! 차분히 말씀하세요. 저도 그때 월남 전선에 있었습니다.”

그는 나의 이런 대꾸에 말 상대가 될 만한 사람을 만났다는 것으로 여겼는지 톤에 힘을 더 실어 그때 상황을 다 풀어보려 하는 것 같이 쏟아냈다. 나는 그 순간 김영두 전우가 쓴 전투수기 ‘안케패스대혈전’와 권태준 전우의 ‘앙케의 눈물’을 떠올리며 상상력을 638고지 현장으로 옮겨 그와의 대화를 이어가려 했다. 



당시 2대대 8중대는 전투의 막바지인 17~18일에서야 투입된 부대였다. 앙케전투는 23일 아침에 종료되었으니까 23일이면 전투종료 24시간도 채 안 된 시점인 것이다. 원래 638고지의 한국군 기지는 1대대 1중대였고 적의 세이파 침투로 개시된 그 전투 상대는 북위 17도선 이남에서 준동하던 인민해방전선 베트콩이 아니라 놀랍게도 1개 연대나 되는 월맹 정규군이었는데 한국군은 그것도 모르고 평상시대로 시시한 베트콩의 공격으로 알고 1개 중대쯤의 병력으로 충분히 퇴치할 수 있다고 판단했음이었는지 중대급 병력을 동원하여 퇴치하면 될 것으로 착각하여 전투를 벌여 축차적인 병력운용을 한 결과 우리 군은 한강투석 식으로 1대가 거의 괴멸한 상태에서 또 투입된 2대대까지 큰 피해를 보았고 8중대는 가장 뒤늦게 초토화된 638고지 정상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그 상황이 얼마나 처참했을까 상상이 되었다. 

피․아의 포화가 무분별하게 교차되는 와중에서 다급하게 투입된 박흥식 중사의 소대는 전투다운전투도 해 보지 못하고 순간에 녹아버린 것이다. 드럼통까지 동원해 방패막이로 삼으며 가파른 고지를 향해 전진을 꾀하던 당시의 모습은 상상으로도 처절함 바로 그것이었다. 포성과 총성은 귀를 먹게 하고 먼지투성이 속에 포화의 불빛은 눈을 멀게 하는데 그래도 사력을 다해 고지를 향해 전진하려 할 때 번개 불이 번쩍하더니 박 중사의 등에 해머가 내려치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저는 그때 주위의 전우들을 돌아봤어요! 그랬더니 하나도 안 보였어요! 다 죽은 거여요. 순간 갑자기 힘이 쭉 빠졌어요.”

충청도 부여에 산다는 노병과 서울의 노병은 고즈넉이 깊어가는 한 밤에 40년 전 월남전선의 치열하던 그때의 한 많은 전쟁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 중사의 소대 위에는 아마 중공제 박망이수류탄이 떨어진 모양이었다. 물론 다른 총포의 무분별한 세례도 받았을 거다. 요행으로 그 아비규환 속에서 박 중사만이 살아남았는데 그도 등어리에 수류탄의 파편을 맞아 기동불능의 상태가 되고 만 것이다.

“저는 그때 생각만 하면 미칠 것 같어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자꾸만 떠올라요.”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는 필연코 심각한 전쟁후유증정신질환의 일종인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증후군에 걸려 있는 것이다. 전쟁의 악몽에 사로잡혀 40년의 세월을 살아오고 있는 노병! …

전우언론에서 25년이나 기자 생활을 해 오고 있는 필자의 뇌리에는 수많은 PTSD증후군을 앓고 있는 전우들의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 있다. 지금도 베트콩과 상상의 전투를 계속하고 있는 전쟁후유증후군의 환자들… 완전군장을 하고 공항의 대합실에서 월남 행 비행기를 타야한다고 쭈그리고 앉아있는 전우. 밤마다 지붕위에 올라가 이웃집 창에 돌멩이(수류탄)를 던지는 전우가 있는가 하면 자신의 아들을 보고 ‘베트콩새끼’라고 하며 칼질을 하는 전우 등 그들에 비하면 박 중사의 상태는 경증이다. PTSD증후군으로 장가도 못가고 망상에 헤매다가 저 세상으로 가버린 전우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그러나 가장으로서 가장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가족에게 짐이 되어 여생을 보내야 하는 노병은 이 사회에서 어떠한 대우를 받고 있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박 중사는 필자에게 다른 사람에게는 차마 하지 못할 말까지도 서슴없이 털어놓았다. 아마 전우이기에 동병상린의 고통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서일 거다.

힘없는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전우 단체는 이렇게 불우한 전우들을 위해 무언가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2012. 4. 18. 심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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