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활히 이용하시기 위하여 본 홈에 회원등록 하여주시기 바랍니다.
처음메뉴 한국문화자료 한국역사자료 교재컨텐츠 족보만들기 메뉴준비 어린이게임
   
   
하위메뉴 8
하위메뉴 9
하위메뉴 10

 

 

高麗銀靑光祿大夫門下侍郞平章事 結城君張公諱夏神道碑銘 幷序

 



 

고려은청광록대부 문하시랑평장사 결성군 장공 휘하 신도비명 병서


청계 장공은 고려말에 정직하게 임금을 섬기기로 소문이 났더니 위운을 만나 조치할 도리가 없어 벼슬을 버리고 돌아가 깨끗이 자결하기를 결심하였으나 마침내 나라가 망함을 보고 종노릇을 안 하기로 맹세하고 이조에 벼슬을 아니하니 그 정충과 탁절은 지금까지 칭송한다.

공의 휘는 夏요 淸溪는 그의 號이다. 안동으로 선계를 삼고 태사인 정자 필자로 시조를 삼았다 태사공이 김태사 선평과 권태사 행과 더불어 삼한을 통합하여 큰공을 세우니 이로부터 벼슬이 연면 하여 문하시중인 諱 사에 이르러 결성 부원군을 봉하니 자손이 결성으로 본관을 고치게 되었다.

    평장사인 휘 갑과 내금인 휘열과 군수인 휘용문은 공의 증조, 조부 아버지이시다. 공이 충숙왕 병진에 나서 성장함에 공민왕을 섬기더니 신돈의 불미함을 보고 대신들과 더불어 죽이기를 청하다 홍무을묘에 문하평리에 오르고 을미에 한양윤을 제수하고 신유에 밀직제학에 오르니 마침그때 가뭄이 극심해 비를 빌어 오게하니 석마(말을 하사)의 포상을 받았다.


    갑자에 평양윤을 제수하고 병인에 은청광록대부에 승진하여 문하시랑평장사에 오르고 결성군을 하다. 무진에 경상도 관찰출척사에 부임하여 행정도 평온하며 농지를 개량하여 주민들에게 혜택을 주었다.


    공이 공민왕에 이어 공양왕때를 당하여 정치가 황태(荒怠)하여 사직이 위해하니 목은 이문입공 및 제신들과 더불어 국사를 바로 잡으려고 온갖 힘을 다 하다가 천명이 전과 달라져 인심이 진주(이태조)에게 돌아가니 공이 탄식하여 말하되 「하늘이 하는 일이니 인력으로는 도리가 없다」]하고 드디어 벼슬을 버리고 결성 박철동 별서에 돌아와 조그마한 정자를 짓고 늙도록 문밖을 나가지 않으며 오직 독서로 여생을 보냈다.


    태조가 득위하자 공을 부르되 공이 죽기를 맹세하고 응하지 않으니 태조가 공의 뜻이 완고해 꺽지못할 것을 알고 불신지심의 예로 대접하여 구항일구(龜項一區)를 하사하여 노후를 세워 주었다. 공이 을묘(정종원년)에 졸하니 향년이 팔십사세이다. 결성 상서면 능동 壬坐丙向에 안장되고 배는 진주강씨니 합장하였다. 삼남과 삼녀


    를 두었으니 정승인 중노(仲魯)와 전서인 계노(季魯)와 참의인 혜노(蕙魯)는 남자이고 전서 김거도와 군수 박귀와 부사 송우는 사위이다. 유인은 부윤 유의는 수선 유례는 목사 유지는 찬성이니 장자의 손이요 유온은 참의 유랑은 응교 유공은 생원 유검은 현감이니 차자의 손이요 집(輯)과 옥강(玉綱)은 계자(막내)의 손이요 이하는 이를 수 없이 번성하여 일일이 다 기록하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발췌: 결성장씨 대동보-

 

 

명칭: 결성장씨 양구문중(진두루 회) home 관리자 휴대전화 : 011-9790-7549 / 팩스번호 : 02-00000-0000 문의메일 : dbsfl3412@empal.com 관리자 : 장의성